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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삶

일본의 종교

by 오남매의푸른하늘 202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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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무엇을 믿을까?

가톨릭 신자로써 기독교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일본이 기독교 신자가 아주 적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 이유를 찾아보다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기독교 역사가 우리나라 보다 약 230년이나 앞서 있다는 사실을. 그뿐만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 보다도 기독교 신자가 너무 적은 것에 놀랐고 순교한 사람들이 많은 것에 놀랐으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심이 높은 것에 놀랐으며 기독교신자 외의 일본사람들에게는 신앙심 이라곤 전혀 없다는 것에도 놀랐다. 그러니까 결론이 이렇게 내려졌다. 일본 사람들의 신앙의 특성은  집중해서 믿지도 않지만 하나에 꽂히면   또 그것밖에 모르고 쉽게 바꾸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47%는 불교 신자이고 45% 정도는 민속종교인 신도를 믿는다. 따라서 일본인들의 대부분종교는 불교나 신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교를 믿는 것도 아닌 것이 일본의 사찰수는 8만여 개로 편의점수 보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찰들의 하는 일은 대부분이 묘지운영에 관한 일을 하며 일본인들의 95%가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장례식으로 먹고산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의 불교는 장례식을 위해서 존재할뿐 신앙의 대상으로 세워진 것은 아니다.
 

일본의 종교 - 신도

일본 사람들은 하나의 신만을 믿는 것이 아니고 불교와 신도를 다 같이 믿는 사람이 많고 그 점을 감안하면 90% 이상이 신도를 믿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신도는 자연적인 것을 신으로 믿는 것 에서 출발하여 생활 속에서 뿌리 박힌, 이제는 문화가 되어버린 종교라 하겠다. 그것은 일본인 스스로가 무종교라고  이야기할 만큼 종교와 생활을 구분할 수 없게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녹아든 결과인 것이다. 일본이 신이 많은 이유는 지진, 화산, 태풍 등 자연재해가 늘 있었고 혹독한 무신정권과 잦은 내전등 일본사람 들을 늘 불안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신들을 막아줄 신을 온갖 것에서 찾아서 의지하다 보니 이토록 많아진 것이라 추측된다. 일본인 들은 옛날부터 생활 속의 모든 것에 신을 둔 것만큼  `태어날 때는 신사에서 축하하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죽어서는 절에 묻힌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종교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된다고 가르친다. 신도는 선과 악의개념도 없어서  선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죽어서 신이 되니 현세에 충실하게 복을 찾아 누리면 그만 이므로 어떤 종교를 가지던 상관이 없다. 신도에서의 신의 숫자는 8백만이나 되고 하느님은 8백만 신들 중 하나에 불과하니 말이다.
 

일본의 그리스도교 역사

일본그리스도교의 역사는 16세기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다.
17세기 초에는 신자수가 약 70만 명으로 급격히 늘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기보다 신을 존중하는 것을 두려워하 여일본에서 사악한 종교의 포교를 금지한 것을 시작으로 에도막부 시대에는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을 1610년 당시에 가톨릭과 개신교 합쳐 신자수가 70만이었는데 지금도 신자수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일본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합쳐 천오백만을 넘도록 폭발적으로  성장해 온 한국 교회를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신자의 수가 많다고 신앙심도 더 높은가? 하면 그건 아니다. 에도 막부의 박해로 수많은 사제와 신자가 순교하고 추방되었으며 1644년 이후에 마지막사제인 코니시 만쇼의 순교 이후로 는 무려 250년간 단 한 명의 사제도 없이 신자들 스스로 모진 박해를 견디며 신앙을 지켜 나갔던 것이다. 일본의 박해는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잔인하고 치밀했다고 전해진다. 
기독교 신앙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끓는 온천물에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했으며 겨울바다에 던져 죽이면서 수영을 못하도록 손가락을 모두 잘라버리는 등 참으로 잔인한 고문과 처형들이 많았다.
오물이 가득한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오물에서 부패한 세균이 얼굴의 상처에 스며들어 얼굴부터 서서히 썩어 들어가며 죽는다 하니 이 얼마나 끔찍한 고문인가. 그러나 일본 신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이런 끔찍한 형벌이나 고문이 아니라 사제 없이 고아처럼 살아가는 그들에게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예수님이나 십자가, 성모마리아 등의 성화가 그려진 판을 밟고 지나가게 하는 후미에란  것을  행하게 했는데  이것을 하고 나면 목숨만은 살려주었다. 신앙 때문에 쫓겨서 숨어 살아가며 받는 육체적 고달픔과 아픔은 견딜 수 있었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후미에를 하고 나면 죄책감에 몸과 영혼이 피폐해졌으며 후미에를 하고 돌아온 날 모두 모여 큰 대야에 발을 씻고 보속 하는 마음으로 그물을 모두가 돌아가며 마셨다. 이 후미에를 매년 반복하며  250년의 끈질긴 박해를 견뎠다고 하니 존경스러운 일이다. 1873년 기독교 금교령이 해제되면서 일본 각 지역에 성당 들이세워졌다.
당시에 신자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성당을 짓는데 앞장섰으며 아마쿠사에 위치한 사키츠 성당은 바로 후미에를 행하던 장소인 촌장집 자리에 세워졌으며 살기 위해 배교행위를 했던 자신들의 죄를 기억하기 위해 후미에를 밟던 판이 있던 자리에 성당과 제대를 설치했다.  어찌 이런 일이 사키츠 성당에만 있었겠는가. 일본 전역에서 오래고 끈질긴 박해 속에서도 자신들의 발 씻은 물을 보속으로 마시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삼키던  이들을 생각할 때 일본의 기독교인구가 아직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루빨리 일본전역 으로의 복음화가 실현되 길 바라본다.
 

일본의 기독교 유적지

오오 우라 성당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1864년 외국인을 위해 세워졌으며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250년 동안 숨어 살던 신자들이 찾아왔던 교회로 유명하다.
쿠로시마성당
나가사키현에 있는 쿠로시마섬에 에 있는 성당으로 박해시대에 이곳까지 숨어 들어온 신자들이 금교령 해제 후에 함께 세운 성당이다. 신자들이 직접 손으로 천 잔과 문에 나뭇결을 그려 넣었으며 1902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국가지정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오오노 성당 역시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로 자연석 돌로 쌓은 외벽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나가사키현에는 기독교 유적이 백여 개 정도 있는데 국보로 지정되거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5개이며 현이나 시단위의 지자체지정 문화재는 무척 많다.  일본에서는 나가사키현에 있는 모든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많이 애쓰고 있으며 조만간 그렇게 되리라 본다.
 
 끝으로 일본도 오랜 기간 동안 모진박해 속에서 끈 질기게 이어져온 교회역사이니만큼  이제는 정체기를 벗어나 일본전역이 기독교로 부흥되길 바라며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길기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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