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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믿음

종교 전쟁

by 오남매의푸른하늘 2023.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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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둘러싸고 일어난  전쟁으로 신의 이름을 빌어 치러진

전쟁을 말하며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을 두고 벌어진 가톨릭과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이슬람 교도들과의 사이에 벌

어진 전쟁이기도하고  또한  16세기에서  17세기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독립전쟁, 프랑스의 위그노전쟁, 독일의 30년 전쟁

등이 있으며 유럽의 패권을 둘러싼 이 전쟁은 처음에는 성지탈환이나 종교개혁을 계기로 시작되었지만  정치적인 목적이 결부되면서 크게 확대되었다.  11세기에서부터 17세기까지 끈질기게 이어진 이 전쟁들은 여러국가,여러계층과 여러사람들의 서로다른 속셈과 이기심으로 많은 폭력과 희생을낳기도 했지만  봉건주의가 쇠퇴하고 동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며 많은 나라와 제국들의 판도가바뀌는 혼란을 겪은시기였다.

근래에 이슬람 에서 지하드로 불리는 IS 등의 극단주의 단체가 테러를 저지르면서 본인들은 성전이라고 부르지만 이제 다시는 신의 이름을 빌어 폭력을 행사하는 전쟁은 자행되어져서는 안된다.

 

여러 가지의 종교 전쟁

십자군전쟁

십자군전쟁은 좁은 의미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이슬람군대 사이에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의 탈환을 두고 벌어진 전쟁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중세시기에 세력을 떨쳤던 이단이나 이교도들의  토벌도 포함되며 가톨릭 내부에도 여러가지 동기들이 있었다.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 때에 제1차 십자군을 소환한 것을 시작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이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식을 했기에 십자군 전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십자군이라는 말은 그 당시에는 여행, 순례라는 말로 사용되고 존재하지 않던 말이나 1760년을 전후로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유럽의 모든 계층들이 열광적으로 이 싸움에 가담했으며 교회는 교회대로 여러 이유가 있었고  봉건영주와 하급기사들은 영토확장의 야망으로, 상인들은 경제적 이득의 욕망으로, 농민들은 봉건사회의  압박 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유로 참전했고 교회는 십자군에 참전한 군사들에게  교회의 면죄부를 주었다.

십자군의 개념은 여러 형태의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18세기말까지 계속되었다.

 

제1차 십자군전쟁 - 1095~1099년

제1차 십자군의 총병력은 10만 명 정도이다.

첫 번째 원정전쟁으로 성지를 탈환한 성과를 거둔다.

제2차 십자군전쟁 - 1147년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병력과 물자만 낭비하게 된다.

제3차 십자군전쟁 - 1189~1192년

이슬람의 지도자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을 빼앗기자 이를 되찾기 위해 결성되었다,

제4차 십자군전쟁 -1201~1204년

1만 2천여의 기사들 기독교를 공격하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다.

라틴제국성립

제5차 십자군전쟁 -1217~1921년

1차 이집트원정 아라고도함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참가했으나 팔레스타인 탈환에 실패하고 십자군은 대패한다.

제6차 십자군전쟁- 1228~1229

교황그레고리오 6세가 신성로마제국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지원하며 술탄과 교섭하여 예루살렘의 일부의 통치권을 받는 데 성공한다.

제7차 십자군전쟁 -1248~1254년

제2차 이집트원정 이라고도 부른다.

프랑스왕 루이 9세가 이집트와 팔레스티나에서 일으킨 전쟁으로 패배하여 포로가 되어 4년 만에 풀려남.

제8차 십자군전쟁 -1270년

7차에 패한 루이 9세가 튀니지에서 십자군을 주도하던 중 사망하여 끝남.

제9차 십자군전쟁 -1271~1272년

제8차 지원군으로 오고 있던 에드워드 왕자의 주도로 전쟁.

1291년 십자군전쟁의 종료

시리아지역 마지막 십자군요새의 함락으로 이슬람이 확장되고 십자군은 철수하면서 300여 년 동안 계속되던 십자군전쟁의 막이 내렸으나 그 후에도 다양한 모습의 십자군 전쟁은 지속되었다.

위그노전쟁

위그노 전쟁은 16세기 후반에 프랑스남부에서 로마 가톨릭의 수령인 기즈공의 군대가 창고에 모여서 예배 중인 개신교인들을 습격하여 학살한 사건으로 바시에서 일어났으며 이 사건으로 74명이 죽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위그노전쟁은 종교의 자유가 명분이지만 신교와 구교의 정치적 세력권을 두고 벌어진 전쟁으로 36년간이나 계속되었다.

1598년 앙리 4세 때 낭트칙령을 발표함으로 전쟁이 종결되었다.

이 칙령에서 프랑스에서 가톨릭 이외에도 개신교교파인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였다.

 

30년 전쟁

종교전쟁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전쟁으로 대표적인 종교전쟁으로 꼽힌다.보히미아에서 가톨릭파인 페르디난트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기 관할지역에 개신교도가 많은것을 알고 경악했다.예수회에 세뇌된 그에게 개신교는 혐오스런 이단에

불과 했으므로 이들을 모두 로마가톨릭으로 되돌리거나 제거 하기로 결심하고 개신교도 들은 반역도로 몰아 처형했고

이후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등이 참가하면서 국제 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잔혹하고 사망자가 많은 전쟁중 하나였으며 사망자수는 800만 명에 이른다.

이후에 유럽은 다른 교파에 대한 종교적 관용을 인정하게 되었다.

 

맺음말

종교는 종교로서의 해야 할 일이 있다. 

종교가 본질을 잊어버리고 길 이아닌 길을 걸을 때 얼마나 많은 위험한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한번 잘못을 할 수는 있지만 신의 이름으로 다시는 그 길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곳곳에서 테러가 자행되고 일부지역 에서 전쟁이 계속되고있으니 신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는가.

신은 우리에게 무고한 생명을 죽일 권리도 부질없는 싸움으로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는 권리도 허락하지 않았고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으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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