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 문명이 발생한 지역과 종교와의 연관
성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명 발생지역의 공통적인 특징에는 기름진 토지가 있는 지역주위로 큰 강을 끼고 있고 관개농업에 유리한 물이 풍부했으며 교통 이 발달했고 청동기와 철기 등의 기술과 함께 문자가 발달한 도시국가라는 점이다.
또한 문자와 함께 철학과 종교 등이 일찍부터 체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는 많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을 배출하였고 이에 따라 각 종교를 대표하는 성인들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BC 4000 년경에서부터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강 유역에서 발달하였으며
현재에는 이라크지역을 말한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두 강의 자연적인 혜택으로 토지가 비옥하였고 개방적인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였고 따라서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다.
이 때문에 정치적 문화적으로 복잡한 색채를 띄고 있었으며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도 극심하였다.
성경 속에서도 여러 나라나 민족들의 패망과 부흥, 왕들의 몰락과 즉위등 에관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두 강은 범람이 잦아 대규모 관개사업이 필요 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며 교역과 상업 또한 활발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이미 BC 4000 년경부터 고도의 기술과 물질문명이 발달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 미술 종교 면에서도 인간 내면의 깊은 갈망을 신앙으로 나타내는 많은 유품들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에도 신전, 제사 등이 있었고 세제나 금융등의 사회, 경제활동과 더불어 신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신을 섬겼고 점술이나 별자리를 관찰했으며 설형문자를 만들어냈다
이 페니키아 문자에 모음이 보태져서 오늘날의 알파벳의 근본이 되었다고 한다.
수메르인은 또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하루를 24 시간으로 나누었으며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 원을 360도로 나누는 것도 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하니 그 옛날부터 그들이 얼마나 머리가 똑똑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인더스문명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인도 북부 에서부터 발원하여 파키스탄을 관통하여 인도양으로 흘러가는 강을 따라 문명이 발생하였다. 인도의 명칭은 인더스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갠지스강과 함께 문화적 상업적으로 파키스탄과 분리되기 전에는 문명발생의 요충지였다. 처음발굴된 유적지가 파키스탄 북동부에 있는 하라파에 있었기에 하라파 문명 이라고도 불렸으나 하라파문명을 발생시킨 라비강은 예전에는 매우 비옥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여러 종족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메마른 곳이 되었다. 아라비아해에서부터 인도 타르 사막까지, 페르시아 지역에서부터 중앙아시아평원에까지 광대한 인더스문명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문명보다 더 넓은 면적으로 약 1천 년 동안 고대문명의 찬란한 꽃을 피웠다. 인더스 문명의 역사는 크게 식량생산시대, 지역화시대, 통합의 시대, 지방화시대, 등 네시기로 나눈다. 지역화 시대에는 건축이 발전하고 농업과 목축과 함께 도자기등도 기술이 발전하여 다양한 공예품이 발명되었다. 도자기등에 글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문자가 발명되었음도 알 수 있다.
종교는 동물이나 자연숭배등 각종 원시신앙이 유행하였고 그들의 장례법에서 윤회나 내세관을 엿볼 수 있다.
초기에는 후대 인도처럼 힌두교적 요소는 별로 없어 보인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숭배의 기원이 인더스문명에서부터 기원된 것이라 하며 힌두교에서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는 형태의 세정의례 또한 그 기원을 인더스 문명에 두고 있다.
인더스 문명은 통합의 시대에서 인더스 문명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지방화시대에 가서는 정치 경제구조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인더스문명은 BC 1500년경 돌연 붕괴하였는데 그것이 아리아인의 침입 및 번영에 따른 나무의 벌채가 사막화를 촉진시켰다는 이야기도 있고 침략자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문명이 발달했던 시기는 확실히 강수량이 지금보다 풍부했고 사람이 살기 좋았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인더스 문명의 신비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고 증거가 제한된 상태여서 이직도 신비에 싸여있는 부분들이 많고 앞으로 많은 조사와 탐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문명
고대 이집트는 약 5000년 전부터 나일강 하류에서 나일강의 범람으로 비옥한 농경지를 따라 번성한 도시와 함께 발생한 문명을 말한다 기원전 30세기경 고대 이집트 문명은 문자, 농업, 도시,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대 타 지역에 비해 압도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가장 번성했던 시기의 이집트는 남쪽으로는 리비아 동쪽으로는 레반트까지 진출하였다. 이집트문명은 피라미드, 스핑크스, 멤피스, 테베, 등등 위대한 유산들을 많이 남기며 풍요로운 시대를 이루었으며 나일강 삼각주에서 폐쇄적 지형 위에서 정치적인 격변은 적었다고 할 수 있다. 기하학, 천문학, 측량술등이 발달했으며 십진법과 태양력을 사용했으며 살아있는 신이라고 불리는 파라오는 정치적 권력과 함께 종교적인 권위까지 가졌다.
역대 파라오 중에 아멘호텝 4세는 이집트의 전통적인 다신교를 폐지하고 태양신만을 숭배하는 일신교를 확립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는 이집트가 종교적 관념의 힘이 매우 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집트는 수로제국의 원조로서 관개산업에 의존하였던 문명으로 기원전 3200년 부터 3천 년 동안 존재했으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으로 그 막을 내렸다. 고대 이집트 인들의 신앙은 태양신을 중심으로 다신교였으며 영혼 불멸사상이 있었고 사후세계의 관념이 있었다. 이집트인들의 문자는 비문이나 묘실에서 발견되었기에 신성문자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이집트의 종교문화와 관련이 깊다. 후에 이집트는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초기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중심지가운데하나가 되었다.
황하문명
황하문명은 중국 황하 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으로 다른 문명보다는 늦은 기원전 2000년 경 발생하여 주변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하나 오늘날은 중국문명, 황허, 양쯔강문명, 등으로 표현된다. 다른 문명들이 하천의 정기적인 범람으로 흙의 퇴적을 이용하여 나일강과 인더스강 유역이 관개농업으로 발전했다면 황하는 홍수로 인한 흙탕물 속에서 실려오는 영양과 함께 농지가 발달했다. 4대 문명을 말할 때 황하문명을 포함시키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황하 문명도 세계사에 끼친 영향 이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또 하나의 문명으로 빼놓지는 않는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이집트문명과는 달리 황하문명에서는 종교의 발상지라 할만한 것도 없고 문명자체도 많은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후대에 이르러 유교의 발상지로 나름의 사상체계를 구축했으니 종교와 문명에서 한 부분을 차지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