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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삶

종묘 이야기

by 오남매의푸른하늘 2023.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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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30도 이상 오르던 무지하게도 덥던날 종묘를 방문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경복궁이나 창경궁은 가봤지만 종묘는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았다.

종묘는 막연하게 왕들의 무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문화역사 해설가의 설명으로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들의 신주와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종묘는 창덕궁과 창경궁과 인접해 있어서 도보로 하루에 같이 돌아볼 수도 있다.

종묘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지어졌는데 도읍지와 함께 왕조의 뿌리를 상징하며 국가 통치의 기반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원래의 종묘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지금 우리가 보는 건물은 광해군 때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건물은 정전과 영녕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정전은 초기에 태조의 4대조를 모시는 것에서 시작하여 창건당시에는 대실 7칸 안에 석실 5칸이 있었으며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왕과 왕비들의 신주를 순서에 따라 모셨고 태조를 포함한 다섯 신위는 다른곳으로 옮기지 않았는데 다섯신위 외에도 불천위라는 제도가 생김에 따라 조선시대 왕들 중 업적이 큰 왕들은 불천위로 결정되었다. 불천위로 결정된 왕은 태종, 세종, 세조, 성종 등이 불천위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모시는 왕과 왕비들이 많아 짐에 따라 동쪽으로 두 번을 더 옮겨 증축하였으며 그에 따라 정전건물이 길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동서 월랑 이 있는 양끝이 꺾어진 모양이다.   정전에서 4대조 이상이 되신 분들은 다시 영년 전으로 차례대로 옮겼는데  오래된 선왕뿐 아니라 영녕전에는 추존된 선왕의 부모나 복위된 왕들도 모셨고 또 관료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현재 정전에 19실, 영녕전에는 16실로 왕과 왕비 그리고 배향공신들이 모셔져 있으며 연산군과 광해군은 제외되었다. 단종도 제외되었었으나 숙종 때 종묘에 위패가 모셔졌다.

 

 

종묘의 제사

종묘의 제사는 처음에 1년에 4번으로 계절에 한 번씩 왕이 세자와 함께 참석하여  신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친히 제사를 드렸으며 제사의 절차는 의식과 의복에서부터 제기의 규격, 제물의 종류, 가짓수등을  엄격하게 규정하였고 복잡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제사를 드리는 왕과 신하들도 없으므로  1971년 이후부터는 전주이 씨 종친에 의한 대동 종약원에서 매년 5월에 정전과 영년 전에서 한차례 씩만 올리고 있다. 제례에 임하는 사람들은 3일 전부터 몸을 정결하게 한다. 제례는 제례악에 맞추어하는데 악기의 종류를 갖추고 가락에 따라 무를 곁들여 악, 가, 무를 모두 갖춘 무형의 문화유산으로 조선시대의 모든 제례가운데 가장 높은 격식을 갖춘 의식이므로 종묘대제 라하였다.

종묘의 정문을 들어서면 세 개의 돌길이 깔려있는데 가운데 있는 돌길은 양옆의 돌길보다 조금 높게 깔려있다.

이것은 신로라고 해서 선왕들의 혼백이  다니는 길로 제향 때 향로를 받들고 다니는 길이며  오른쪽길은 왕도이고 왼쪽길은 세자가 걷는 길로  넓적한 돌이 깔린 삼도가 북으로 길게 나있다. 그 외 신하들은 옆에 있는 흙길로 다녔다한다.

이 길을 따라 왕은 제사를 드리기 전 목욕재계하던 어숙실로 가서 몸을 깨끗이 하고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게 된다.

정전 옆쪽으로 공신당이 있는데 공신당은 역대왕의 배향공신 83 신위를 모신곳이다.

종묘는 다른 건축물들과는 달리 제사를 위한 공간으로 건축되었으므로 건물이 화려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모든 건축이 단순하며 장식도 많지 않고  단청 또한 화려하지 않게 꼭 필요한 공간만을 건축한 것이 종묘의 건축의 특징이자 상징이다.

 

종묘의 관리

종묘의 건축물과 제례의식은 600여 년간 이어져온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종묘 제례악 역시 유네스코무형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종묘의 주요 건물들은 정전과 영녕전이 중심건물로 서있고 있고  정전은 신성함을  높이기 위해 전벽돌로 두껍게 쌓아 어둡게 만들었다고 한다. 내부는 칸막이 없이 하나의 공간이며 뒷면 퇴칸에는 각 칸마다 신주를 모신 감실이 있다. 종묘의 정문에서 삼도를 따라가면 어숙실이 나오며 어숙실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는 망묘루와 향대청이 있다. 향대청은 종묘에 사용하는 제사  예물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고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밖에 제례 때 음악을 연주하는 아악사들이 대기하거나 음악을 연습하던 건물인 악공청이 있는데 현재는 소실되어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지 못해 한 채의 건물만 있었다. 또 제사 때사용하는 각종 그릇등을 보관하는 곳으로 제기고가 있는데 제사 때 쓰는 그릇은 성스러운 것이므로 습기가 차지 않게 땅에서 높게 띄워 마룻바닥으로 만들었다.

 

종묘는 현재 종묘 내 관리와 시설을 보호하는 문화재 청 소속 종묘관리소가 있으며 종묘 안에 관리소 건물이 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정전 전체가 보수공사로 인해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안타까웠지만 우리에게도 면면히 이어져내려 오는 유산이 있음에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종묘 내에서는 자유로이 관람을 하지 못하고 가이드의 안내와 해설을 들어야 하지만 또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의미를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 되니 더 좋은 것 같았다. 외국인들을 위해 여러 나라의 언어로도 가이드가  있어서 외국인들에게도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움을 알릴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날씨는 더웠지만 큰 나무들이 있어서 관람하기에는 힘들지 않으니 모두들 한 번쯤 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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